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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호(洞庭湖)와 악양루(岳陽樓)

갈주댐을
지난 유람선은 넓은 강으로 변한 양자강을 따라 끝없이 끝없이 내려간다.
강폭은 점점 넓어져서 저쪽 강뚝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넓어지면서 그 높던 산들은 어디로 가고 가로수와
넓은 평야만 계속 나타난다. 삼국지의 고향 형주를 지나고 흘러
흘러 밤중이면 악양을 지나간다. 한국의 문인들을 태운 유람선이라면
동정호와 악양루에 내려서 두 곳을 꼭 둘러 봐야겠지만 미국관광객이
주요 승객인 빅토리아호는 한밤중에 통과를 한다.
동정호는
그 크기가 하도 커서 바다를 연상하게 하고 양자강과는 이어져 있다.
중국과 시와 문학을 좋아했던 우리 조상들이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동정호와 악양루를 눈앞에 두고 지나간다는 생각이 매우 서운하였다.
시인 두보도 악양루에 오르는 것을 너무 감격하여 유명한 등악양루를
남겼다. 유람선에 따라 이곳에 내리는 경우도 있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상행 유람선의 경우는 이곳에 서기도 한다.
중국 강남의 3대 누각 악양루는 무한의 황학루(黃鶴樓)와 남창의 등왕각 (藤王閣)과 함께 강남 3대 명루로 꼽힌다.
한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두보(杜甫)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무대 동정호와 악양루이다.
|  호남성
악양의 악양루(岳陽樓) 호남성 악양시 서문 성루 위에 위치한 것으로, 두보의
등악양루 로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 한국에
가장 잘 알려진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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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북성
무한의 황학루(黃鶴樓) 무한 장강 기슭에 위치하고 있고, 천고의 명승, 천하의 절경으로 칭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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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서성
남창의 등왕각(藤王閣)
남창시 감강 기슭에 위치, 당태종 이세민의 아우 이원영 등왕이 홍주 도독으로 임명.되었을 때 지었다.
각은 그의 봉호로 명명되었다. |
동정호(洞庭湖) 동정호는 중국에서 두 번째로 넓은 담수호로 호수의 면적은 계절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정도로 수량의 변화가 많다. 춘추 전국시대 이래 역대의 개간과 수리공사로 해서 오늘과 같은 호수가 되었는데, 호남성내의
농수(濃水), 상강(湘江), 원수(沅水), 자수(資水)의 4대 하천이 흘러들었다가 양자강으로 흘러 나간다. 그러나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의미의 호수가 아니라 장강의 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장강이 물이 들어오고 나가고 있으며, 단지 그 형태가 호수처럼 보일 뿐이다.
군산 은침차(銀針茶) 동정호 안에는 군산(君山)이라 부르는 조그만 섬이 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군산에는 옛부터 내려오는 갖가지 전설이 묻혀있으며 호반의
악양루에서 보면『은쟁반 위에 놓인 푸른 조개』처럼 보인다. 이 섬은 중국의 명차로 알려진 은침차와 관상용 죽림이 재배되고 있다.
이 은침차에 얽힌
유래를 보면 선인(仙人)이 살고 있다는 군산에서 생산되는 차로
당나라때부터 황제에 진상되는 귀한 물건이었다. 어떤 승려가 독특한
방법으로 개발한 은침차는 하얀색으로 된차가 마치 은빛나는 바늘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생산량이 적어 희소가치가 있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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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 있는 유명
차상점에서 사온 은침차를 끓여 보았더니 뜨거운물에
들어간 차잎이 바늘처럼 빳빳하게 서있다가 얼마 시간이
지나면 가라 앉는다. 중국인의 설명에 의하면 제대로
된 은침차는 세 번을 반복해서 서있다가 가라 앉았다가
반복을 한다고 한다. 중국인의 과장인지 진짜로 세
번씩이나 섰다 가라앉는지 는 확인하지 못했다. 은침차는
투명한 잔에 마셔야 제대로 서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군산
은침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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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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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 손권은 유비와
형주의 취하고자 다투면서 노숙에게 전략요충지인 동정호
부근을 장악하라고 지시한다. 이에 오나라 대장군 노숙은
동정호에서 수군을 훈련시키면서 성을 축조하였다.
이렇게 하여 서쪽
산을 등지고 호수의 군사훈련을 감독할 수 있는 망루를
지었는데 이것이 악양루의 시초가 되었다.
그후 당나라때 이곳으로
좌천되어 내려온 재상 장설(張說)이 다시 지었는데
정작 유명해진 것은 두보의 등악양루가 유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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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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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양루는
황학루, 등왕각 과 함께 중국 강남 3대 누각으로 그 명성이 높다.
누각 하나만은 황학루나 등왕각에 비해 뛰어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동정호, 악양루 그리고 천하명인들의 시문이 있는 악양루는 제일의
누각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 15m에
총 3층으로 된 이 누각은 층마다 황금색 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우아하거니와 못을 하나도 쓰지 않고
지었기 때문에 구조역학적인 면에서도 걸작이라고 한다. 누각 주위에는 왼쪽으로 삼취정(三醉亭), 오른쪽으로 선매정(仙梅亭), 앞으로 두보정(杜甫亭)
등이 있다.
두보의 명시 등악양루(登岳陽樓)를 한번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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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악양루(登岳陽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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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聞洞庭水 |
석문동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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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동정호에 대해 들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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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上岳陽樓 |
금상악양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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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서야 악양루에 오르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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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楚東南折 |
오초동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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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나라와 초나라가 동남쪽에 갈라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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乾坤日夜浮 |
건곤일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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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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親朋無一字 |
친붕무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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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친구의 편지도 없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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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去有孤舟 |
노거유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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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외로운 배
뿐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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戎馬關山北 |
융마관산북 |
싸움터의 말이 북쪽에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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憑軒涕泗流 |
빙헌체사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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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에 의지해 눈물을 흘리노라 |
이
시를 지을 당시의 두보는 완숙한 경지의 시를 지었으나 본인의
형편은 '하늘과 땅사이의 외로운 갈매기"라 비유했듯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힘들고 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지친 몸을 이끌고 꿈에 그리던 악양루에 올라 지은시가 등악양루
이다. 유랑 생활 중 악양루에 올라 동정 호수의 장관을 보고 기뻐하면서도 자신의 외로움과 나라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눈물로써 가슴아파 하는 시이다.
우국지정과 향수가 잘 나타나 있다. 그후
그는 꿈에 그리던 하남성의 고향을 찾아 나서는데 이때 그의
나이 59세. 그러나 그 시인은 고향을 가지 못하고 장사와 악양사이의
배위에서 숨을 거둔다. ▶
다음은 유람선의 종착지 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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