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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삼협의 마지막 관문

 

    장강삼협의 마지막 관문 - 서릉협(西陵峽/ 시링샤)의 남진관(南津關) 

  삼협댐 공사현장을 둘러 보고온 승객들은 다시 제3협의 마지막 코스를 향해 항해한다. 삼협은 의창에 있는 남진관(南津關)까지가 그 끝인데 삼협댐을 지나면서 물의 양은 점점 많아져서 강폭은 넓어진다. 모두들 여러 가지 경관을 이미 수도없이 보아왔기 때문에 갑판의자에 앉아 양옆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담담하게 쳐다 본다. 때론 동양화에서나 볼 수 있는 높은산 바위위에 지은 정자도 보이고 아찔한 낭떠러지의 구름다리와 케이블카도 보인다.

산과 계곡 절벽의 변화는 끝이 없다. 절벽위에 지어놓은 한두채 집들을 보며 저들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서릉협 주위에는 높은곳에 새아파트들이 많은데, 삼협댐이 완공되면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이 물에 잠기게 되므로 정부에서 새로 지어준 집들이다. 아직 이사는 들어가지 않고 물이 높아지면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 다운 발상으로 토지보상이나 하는 문제는 없고 집만 지어주면 이주시키는 문제가 해결된다고 한다.

여러 가지 경관중에 눈길을 끼는 것이 천연다리(Natural Bridge)이다. 왼쪽사진의 오른쪽 끝에 작은 사람이 보이듯이 공중에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다리 아래 공간에 보이는 흙탕물은 양자강 물이다. 승객들은 배에서 하늘을 쳐다보면서 다리 구경을 한다.

◀ 다리를 통해서 내려다 본 양자강

  중국인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랜 역사동안 풍부한 상상력으로 여러 가지 이름과 전설을 만들어 놓았다. 선상 갑판에서 설명을 하는 가이드는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는데 "지금부터 코끼리가 보이는데 암수 한 마리씩 두 마리가 있습니다. 발견하신분?" 그러면 그때부터 손님들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숨은 그림 찾듯이 이산 저산을 본다. 나중에 가이드이 설명을 들으면 수긍이 가지만 바위를 보고 코끼리를 상상해 내는 것은 쉽지 않지만 배에서는 재미난 일이다.

 이밖에도 소의 간 처럼 생긴 바위가 절벽에 불쑥 튀어나와 있기도 하고, 소간 말허파 협곡이란뜻으로 우간마폐협(牛肝馬肺峽), 손오공 바위, 마치 귀신의 문처럼 음침하다고 하는 귀문관(鬼門關), 노인이 황소를 끌고 가는 모습이라고 하여 황우협(黃牛峽),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서역으로 가는 모습을 닮은 바위라고 불리우는 4개의 기석(奇石).

  남진관(南津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며 산수를 관광하는 동안 남진관(南津關)에 다다른다. 거센물결을 이루며 흐르던 장강은 남진관에 이르면 강폭이 넓어지면서 갑자기 물길이 느려진다. 양자강의 수군을 장악하기위해 남진관은 옛부터 군사의 요충지로 필사적으로 뺏으려 했던 곳으로 유명하였다. 이곳에는 장비(張飛)가 북을 치면서 군사를 지휘하는 모습을 돌로 만든 동상이 있다. 이곳은 의창(宜昌)시 에 속하며 근처에는 삼유동(三遊洞)의 유적지가 있다.


 남진관(南津關)- 삼협의 출구


 
장비의 석상: 북을 두드리면서 군사를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다.(아래 사진의 오른쪽 위부분을  확대한 사진)

◀ 남진관(南津關)- 군사 요충지  

 양자강에서 바로 볼 수는 없지만 남진관 바로 북쪽에 삼유동이라고 하는 유명한 곳을 소개한다.

  삼유동(三遊洞)
 
동굴과 암자 절벽으로 아름다운 경승지로서 처음에 819년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등 3인이 유람을 왔던 동굴이라하여 전삼유(前三遊)라 하였고 그후 1056년 송나라 시인 소순 소철 소식 3부자가 유람을 와서 후삼유(後三遊)라고 불리웠다. 이곳에는 백거이의 시가 새겨져 있으며 수많은 시인과 묵객이 글을 남기고 갔다. 삼유동을 가기위해서는 유람선에서 하차하여 자동차로 이동하여야 한다.


  삼유동(三遊洞)

 남진관을 나온 유람선은 이창으로 접어들면서 갈주패댐 구역으로 들어선다.

                   다음은 갈주패 댐을 유람선으로 통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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